해외 생활도 어느 덧 10년을 넘어섰고, 해외에서 직장 생활을 한 지도 7년차. 이 쯤 되면 영어는 완벽해야 되는 게 아닌가? 내가 상상한 30대의 나의 모습은 마케팅 매니저로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고급 영어를 구사하면서 프레젠테이션하는 것이었는데.. 나의 현실은 매 프레젠테이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잠을 설치며 며칠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프레젠테이션 이후에는 내 영어관련 실수들을 곱씹어보며 며칠간 창피해하고 괴로워한다.
내 첫 영어 프레젠테이션 경험은 대학교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영어를 수학/과학 다음으로 싫어했고, 영어 과외를 2년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수능 영어 성적은 개판이었다. 내 성적으로 수도권 내에 갈 수 있는 4년제 대학교는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도의 어느 한 전문대에 합격하여 관광을 전공하기로 한 나는, 또 다시 영어의 벽에 부딪혔다. 그래, 관광 전공에서 영어가 빠질 수 없지..대학교에서는 영어 본문을 읽고 문제에 적합한 답을 찾아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일랜드에서 특별히 오신 원어민 교수님의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 때 내가 어떻게 그 영어 강의를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어민 교수님의 강의는 역시나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고, 책으로만 겨우 공부하여 시험을 치며 성적을 대충 받았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어느 날, 원어민 교수님에게 내가 강의를 빠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야했는데, 영어를 할 줄 몰라 영어를 잘 하던 친한 친구를 데려가 그 친구에게 통역을 시켰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나였기에, 그 시절에 해야했던 영어 프레젠테이션은 미리 단어와 문장들을 적어서 그걸 떠듬떠듬 읽어내려가며 발표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영어 바보에 까웠던 내가 어떻게 발표를 준비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나 스스로 영어 작문해서 발표하진 않았으리라고 확신한다. (그 때 영어를 잘했던 친구가 스킄립트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사람의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영어로 고생하던 내가 지금은 영어를 한국어보다 더 많이 쓰며, 해외에서 마케팅 매니저로서 일을 하며 지내고 있지 않은가. 그 때에 비해 나의 영어 실력은 엄청난 발전을 하였지만, 영어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공포는 아직도 여전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업무는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기에, 실적 리포트부터 앞으로의 마케팅 플랜까지 클라이언트에게 발표하는 것이 일상이다. 지금까지 나름 여러가지의 다양한 방법들로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봤지만, 제일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내가 말할 내용들을 불렛 포인트 형태로 머릿속에 저장하고, 그 포인트들을 기억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긴장하는 순간 내 영어의 문법이 엉망진창이 되며, 내가 말해야할 내용들을 까먹게 된다는 것. 내가 말을 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무슨 어린 애가 말하는 거 마냥 더듬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이 때마다, 나를 더 최악으로 느끼게 했던 것은 쥬니어 직급의 원어민 동료들은 아무 문제 없이 프레젠테이션을 잘하고 있는데, 매니저 직급인 내가 영어를 버벅거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멜버른 사무실로 이동 후 1년 동안은, 내가 이 회사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휩싸여서 지냈던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도 비슷한 업무를 했지만 한국 시장을 맡고 있었기에 스트레스가 그리 크지 않았다. 여기선 호주 클라이언트를 맡았고, 호주 시장을 맡았기에 더 걱정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 2년 힘들게 적응을 해가면서 조금씩 생각과 마음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스트레스가 약간씩 줄기 시작했다.
일단 내 분야에 관해서는 내가 제일 많이 알고 있다는 것.
장도연이 청페강연에서 '여러분들이 다 x밥으로 보여요' 라는 말을 하며, 무대에 올라가기 전 이런 주문을 걸고 대인공포증을 깨려고 한다라는 말을 했던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이 크게 공감되었다. 나도 그 때 쯤 프레젠테이션 직전마다 비슷하게 주문을 걸고 있었다. x밥까지는 아니지만, 그들은 나를 전문가로 생각하고 있으며, 나는 그들에게 새로운 내용을 알려주는 사람이라는 것. 이건 사실 프레젠테이션 직전 내 마음을 진정시키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그들이 모르는 내용을 내가 알려주는 사람이라는 생각만으로, 그들은 내 영어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말하는 내용에 주목할 사람들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발표 전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완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긴장한다는 것.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공포와 스트레스가 컸기 때문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는 법에 대한 워크샵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워크샵의 강사는 모든 사람들은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긴장을 하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사람들의 긴장하는 모습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손 혹은 다리를 떨거나, 얼굴이 상기되거나, 목소리가 변하는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 이후에 나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지켜보기 시작했고, 프레젠테이션이 일상인 듯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거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부분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공포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대해 긴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과 나의 차이점은 긴장하는 정도의 차이, 긴장감을 절제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어떻게 매끄럽게 하느냐에 차이였다.
실수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발표 후, 나의 영어 실수들을 곱씹어보며, 자괴감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내용을 전달하는 데에는 큰 이상이 없었지만, 내 영어 문장이 엉망진창이었던 것에 대해서 심하게 괴로워했다. 남들이 내 영어실력을 보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생각만 해도 창피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이 증상은 아직도 심하지만, 이전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졌다. 이는 우연히 어느 날, 남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그렇게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였다. 다들 자기 삶을 사느라 바쁘고, 이는 심지어 프레젠테이션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발표하는 순간에도 내 동료들은 각자 자기들이 발표할 부분에 대해서 준비하거나, 클라이언트와 함께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내가 하는 영어 실수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나만 봐도 그랬다. 동료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집중하였고, 그 사람이 어떤 문장을 잘못 말했는지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내 몇몇의 동료들도 원어민이 아니었기에 영어 실수는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의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들으며 그 사람의 영어 실력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조차 그 사람의 영어 문장/문법 실수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나의 실수도 결국은 남들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영어 문법이 틀리는 문장을 말하더라도, 그들은 내 영어선생님이 아니기에 내 영어실력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엉터리 영어 문장에 대해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니 나도 사소한 영어 문법 실수에 대해 연연할 필요가 없다.
연습이 최고라는 것.
내 프레젠테이션의 실질적인 문제는 결국 영어를 완벽하게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긴장을 해 영어 문장들이 다 망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원어민인 동료들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결국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침에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수다떨다가, 때가 되면 프레젠테이션을 매끄럽게 할 때, 나는 그들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혼자 계속 중얼거리며 연습해야 했다. 이는 사실 내가 무엇을 말해야하는지 상기시켜줄 뿐만 아니라 영어로 입을 풀면서 프레젠테이션 도중 당황했을 때의 버벅거리거나 영어 문법 실수를 줄이는데 도움을 준다.
영어 프레젠테이션은 아직도 힘들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만 나는 차마 이걸 즐기지는 못하겠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영어 프레젠테이션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최대한 연습하고 지나간 일은 빨리 빨리 잊어버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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